조선시대 유명한 기생!
기생 황진이 (출생 및 사망 미상)
소설, 드라마, 영화로 유명한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
그녀는 왕족 출신이 아니였음에도 조선시대에서 아주 유명했었는데요.
그녀는 사실 중종 시절 양반 가문의 자식이였으나 어머니가 천민 출신의 시각 장애인이였기 때문에 천민 출신 기녀가 되었습니다.
사실 황진이는 양반의 첩이 될 운명이였지만 그녀는 기녀가 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기녀들은 양반의 첩 자리를 몹시 소원했는데 그녀는 도리어 첩 자리를 버리고 기녀가 된 것이죠.
황진이가 기생이 된 동기에 대해서는 설이 많은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설은 황진이가 15세에 이웃집 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가 병으로 죽자 기생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예술적 재능을 갖추어 기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쁜 외모와 뛰어난 능력으로 유명해진 황진이는 당시 최고의 군자로 불리던 벽계수를 유혹해 자신의 미모를 널리 알리며 학식과 권세를 겸비한 조선사대부들을 역으로 희롱하고자 했는데요.
황진이의 격조있는 구애시 앞에 벽계수는 군자로서의 허울을 벗어 던졌고 이런 벽계수를 무너뜨린 일로 황진이는 세간의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 일로 승승장구한 황진이는 도학군자로 이름을 날리던 화담 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하였으나 그는 끝끝내 그녀의 유혹을 뿌리쳐
화담선생의 높은 덕망 앞에 황진이가 감복하여 그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하였다고 합니다. 황진이의 미모와 재능에 넘어가지 않았던 유일한 남자였죠.
또 한양 제일의 소리꾼이였던 이사종을 사랑해 6년간 전국을 유람하여 조선 팔도를 유람하며 한양과 송악에서 남녀간의 사랑을 초월한 예술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로 인생을 함께 나눴다고 합니다.
그녀의 마지막 연인은 대제학까지 벼슬을 오른 소세양으로 그는 젊어서부터 여색을 밝혔지만 자신은 황진이를 딱 30일동안만 사귀고 깨끗하게 헤어질 수 있다고 유세를 떨었으나 막상 황진이와 이별을 하는 날 황진이의 시 한편에 끝내는 헤어지지 못해
친구들이 소세양을 놀렸다고 하네요.
황진이는 소세양을 마지막 연인으로 끝으로 40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는데요. 신분은 비록 미천한 기녀였지만 학식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황진이는 선비들과 대등하게 사귈 수 있었고, 그들과 어울려 산천을 감상하며 남다른 기생 인생을 살았습니다.
기생 장녹수(? ~ 1506)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 장녹수. 그녀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 생활을 하며 시집도 여러번가고 자식까지 있는 무려 유부녀였는데요!!!! 어떻게 궐에 들어가서 연산군에 눈에 띄어 최고의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노래와 춤을 매우 잘했는데 소리가 매우 맑고 나이가 30세였음에도 불구하고 16세정도로 보이는 동안이였다고 합니다.
요염하며 얼굴도 이쁘고 어려보이고 노래와 춤까지 잘춘다는 여인이 있다는 소식에 연산군은 그녀를 흥청으로 뽑아 궁궐로 들였는데요.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음탕한 삶과 삐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총애를 한몸에 받아 숙원으로 후궁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무수한 금은보화를 하사받았고 연산군의 총애를 배경삼아 정치를 좌지우지하였습니다.
그녀는 연산군을 어린아이나 노예처럼 대할 수 있는 일한 사람으로 연산군은 화나는 일이 있어도 녹수만 보면 기뻐할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1506년 종종반정 후 반정 세력의 제거 대상 1호로 장 먼저 참형을 당해 생을 마감한 여인이였습니다.
유명한 조선시대 기생들은 대부분 절명하거나 끝이 좋지 않았는데요. 역시 미인박명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였나 봅니다.